▲ 지해림 순경

지난 4월 29일 저녁 8시경 갑자기 어느 외국인이 눈물을 흘리며 우리 파출소 문을 열고 들어왔다.
그녀가 하는 말은 단 하나 뿐이었다.
“please....help me..." 첫눈에 봐도 앳되 보이는 그녀는 한국으로 시집온 필리핀 여성이었다.

무슨일인지 물어보니, 필리핀에서 남편과 법적으로 결혼을 하고, 한국에 들어온 지는 2주밖에 되지 않았는데 남편이 술만 취하면 때리거나 윽박지르는 등 폭력을 행사해 더 이상은 같이 살 수가 없어 필리핀으로 돌아가고 싶다는 것이었다.

필리핀으로 돌아가려면 여권과 외국인등록증이 필요한데, 남편이 가지고 있어서 필리핀으로 돌아가지 못한다며 연신 울먹였다.

1366에 전화해 이런 경우 어떻게 해야 하는지 절차를 물어보자, 임시 쉼터에 머물면서 절차를 진행하겠다고 하여 그날 임시 쉼터에 데려다주었다.

그 후로, 쉼터로 전화를 걸어 잘 지내고 있는지 종종 안부를 물었는데, 그녀는 나에게 ’하루가 가고, 그 다음날이 오고 그날이 가면 또 그 다음날이 와요..‘라며 막막하고 불안한 심정을 토로했다.
가뜩이나 낯선 타국에서, 가장 믿었던 남편으로부터 폭행을 당하고, 지금 자기가 어떤 상황에 처해있는지 아무도 말해주지 못할 때 느끼는 외로움과 불안함이란 아마 상상하는 것 이상으로 클 것이라고 생각했다.

그런 이유에서 우리는 좀 더 적극적으로 방법을 강구했다.
임시 쉼터 원장님과 상의 끝에, 피해자로 하여금 외국인등록증과 여권을 재발급 받을 수 있도록 협조하여 발급 절차 진행을 부탁하였다.

이러한 내용들을 피해자에게 설명해주자, 여권과 외국인등록증만 있으면 언제든 필리핀으로 돌아갈 수 있으니 나에게 자유를 주어서 너무나 고맙다며 기뻐했다.

또한 피해자에게 사무실 전화번호와 내 휴대폰번호를 적어주면서, 언제든 궁금한 것이 있거나 걱정이 될 때 전화하라고 했더니 그러겠다며 번호가 적힌 종이를 손에 꼭 쥐고 안도의 눈물을 흘렸고, 몇 일 후, 너무나 감사하다는 장문의 편지를 적어 내 손에도 쥐어주었다.

이번 일을 통해 그녀에게 여권과 외국인등록증 뿐만 아니라 희망까지 준 것 같아 기쁘다.